북한 계획경제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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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북한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은 결코 ‘아래로부터의 요구’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소련군이라는 호랑이에 올라탄 김일성과 빨치산을 비롯한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결과일 뿐이었다. 북한의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식민지 시기 억눌리고 가난했던 민중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본래 모든 이데올로기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그를 기준으로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이를 극복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북한의 사회주의 세력은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빈곤과 저발전을 극복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전후 북한의 지배권력은 지배체제를 형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지배체제가 공고히 될수록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더욱 커졌다. 여러 정책들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권력은 지배질서를 차츰 구축해 나갔지만, 그 과정에서 인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정치의 공간에서도 경제계획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었다. 인민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해석할 권한조차도 가지지 못했다.
북한체제는 다른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평등을 과학으로 만들겠다면서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실패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사회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기가 어렵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체제는 권력투쟁을 거쳐 지배체제의 원형(prototype)이 완성된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실재하는 사회주의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노동자와 대중들의 꿈을 빼앗고 말았다. 현실에서 이데올로기는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했으며, 북한은 권력의 욕망만이 충실히 이행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북한사회에서 지배권력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인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삶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머리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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