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자 사진가, 여행가,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했던 이 감독의 본명은 크리스티앙 프랑수아 부쉬-빌뇌브. 크리스 마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그 스스로 지은 영어식 이름을 존중해서 ‘크리스 마르케’ 대신 ‘크리스 마커’로 읽는다). 사실주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기법을 뛰어넘어 이미지의 정치적,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한 새로운 영상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마커는 1950년대부터 알랭 레네, 아네스 바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과 어울리며 시, 소설, 평론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었다. 마커와 친구들은 동시대 누벨바그의 흐름과 구분하여 ‘좌안파Rive Gauche’로 불리기도 했는데, 마커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가장 급진적이었다. 그는 1960년대 프랑스 다큐멘터리 운동을 주도한 시네마 베리테([영화-진실]) 경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영화를 ‘시네, 마 베리테’([영화, 나의 진실])로 지칭하면서 내밀한 주관적 진실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표현해냈다. 또한 마커는 오늘날 주목받는 경향 중 하나인 ‘에세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피해 갈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적인 이미지와 성찰적인 내레이션을 결합해 영화에 그만의 사유와 정서를 기입하는 표현 방식은 마커의 인장처럼 자리 잡았다. 마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데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201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사진집, 애니메이션, PC 통신, CD-rom, 영상 설치, 합성영상, 게임 영상, 컴퓨터그래픽, 유튜브 프레젠테이션 등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영상 실험을 이어갔다.
주요 작품으로 <조각상도 죽는다>(1953, 알랭 레네와 공동 연출),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1958), <환송대>(1962), <아름다운 오월>(1962), <베트남 멀리서>(1967, 옴니버스 영화), <공기의 기반은 붉다>(1977), <태양 없이>(1983), <안드레이 아르세니예비치[타르콥스키]의 어떤 하루>(1999) 등이 있다. 국내에는 사진집『북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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