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무거운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지만 청년층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낡은 주제다. 그렇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통일될 미래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청년들이 관심가질 매력요인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통일단상이란 제목으로 수필잡지 「에세이스트」에 수년간 연재한 글과 북한법 연구자로서 겪은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이다. 통상의 에세이는 개인의 과거이야기가 주류이지만 이 책의 시점은 대부분 현재이고, 일부는 나의 미래를 상상한 것이다. 2030년 쯤 남북교류가 자유로워지고, 만일 내가 평양에서 생활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 보았다. 북한핵문제로 인한 극한 대치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바꾸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면서 지금 당장 준비할 것을 찾았다.
또 다른 형태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무하국 이야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상의 나라, 무하국 청년의 일상을 소재로 남북한의 현실을 풍자해 보았다. 이런 유형의 글쓰기가 낯설 수 있겠지만 통일이라는 꿈 자체가 낯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리라 믿는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10년 이상 북한법을 강의하고 있다. 강의시간에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너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각자 자기주장의 근거를 공개하고, 제3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논의하면서 답을 찾아 나갔다. 남북사이의 일도 그럴 것 같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상대의 생각을 알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찾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미래 그것이 통일이라 믿는다.
책을 편집하면서 북한을 보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서 모든 분야를 연구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 방향이 같더라도 속도가 다른 사람과 솔직한 대화를 하면서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서로간의 의견이 다른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토론해야 한다. 북한, 통일이야 말로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한 분야다. 이 책이 그런 토론의 단초가 되면 좋겠다.
필자는 정부 여러 부처에서 위원회 활동을 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거나 토론한 일도 있었다. 다양한 생각을 펼치고 서로 공방하는 토론공간은 소중하다. 그런 공간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씨앗이 뿌려지고 익어간다. 성숙한 토론문화가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통일논의의 폭을 확장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가끔씩 내가 사는 곳을 떠나 밖에서 남북한을 보면 안에서 볼 때와 달리 보이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다. 역사를 배울 때 우리 민족은 외침을 많이 받았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다고 들었지만 다른 나라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더러는 우리보다 심했다. 내 나라의 분단고통을 남에게 알리고 공감을 얻으려면, 그래서 통일을 이루려면, 먼저 다른 나라 사람의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북한을 연구하면서 법과 제도에 주목했다. 특정한 분야에서 남북한의 제도 차이는 왜 발생했는지 연구하면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 분단 직후 남북한이 각자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를 형성하는 과정, 그때 형성된 제도가 변화과정을 거쳐 현재 적용되는 실태를 보면서 사람의 삶에 법과 제도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생각을 한다. 미래사회가 보다 평화롭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제도를 구상하고, 통일한국에 적용될 법과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생각해 볼 때도 있다.
독서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접근방식을 배우기도 했다. 다른 시대의 사람, 다른 나라 사람의 글에서 배운다는 것이 좋았다. 가끔은 내가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던 과거의 일을 새삼스레 되돌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고 그 책의 내용에 영향을 받아 글을 썼으니 먼저 책을 발간한 저자들에게 감사하다.
수년간 집필한 글을 모으고 정리하면서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글솜씨도 그렇고 생각의 깊이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었다. 통일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기존의 논의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책이 통일한국을 상상하는 불씨가 되길 희망한다.
이 책을 아버지 권오갑, 어머니 김춘자 님께 바친다.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늘 “우리는 괜찮다. 걱정하지마라.” 말씀하신다. 그 말씀만 들어도 힘이 난다. 두 분의 건강이 오랫동안 유지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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