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행기 북한의 예술정치
책 정보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이행기: 북한의 예술정치
북한 영화를 통해 분석하고 의미를 규명하다
이 책은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이행기에 제작된 북한 영화를 통해서 북한의 예술정치를 탐구한 책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문화정책을 살펴보고 김정일과 김정은 정권 초기 예술영화의 ‘행동(praxis)’과 ‘감정(affectus)’을 비교분석하면서 정치사회적 의미를 규명하였다.
1장은 권력이행기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예술계의 담론이다. 예술계의 담론은 지속되면서도 변화된다. 지속은 ‘사회주의 체제 수호’와 ‘수령형상화’라는 측면이며, 이 두 요소는 북한의 어떤 시기에도 나타나는 북한 예술 창작의 핵심 주제이자 소재이다. 그러나 변화적 요소도 분명 나타난다. 김정일 시대에는 ‘최고 지도자의 덕성’에 초점을 두고 ‘민족’을 강조했다면, 김정은 시대는 ‘최고 지도자의 영웅성’에 초점을 두고 ‘과학화와 현대화’를 강조한 점이다. 김정일 정권 초기에는 경제적 위기로 원자화되는 북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서, 김정은 정권 초기는 정통성 확립과 사회주의 문명강국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2장에서는 영화에 나타난 예술정치를 ‘행동’과 ‘감정’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행동’을 이항대립으로 분석하면,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에는 공통적으로 ‘개인 욕망’보다 ‘집단 욕망’을 강조한다는 것이 발견된다. 차이점은 김정일 시대에 ‘의리’를, 김정은 시대는 ‘돈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경제난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이탈현상 때문이며, 김정은 시대는 ‘당’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 때문이다. 한편 ‘감정’을 서사 구조로 분석했을 때에는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모든 영화에서 공통되는 패턴이 나타난다.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영화는 모두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하면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여 관객의 이성을 자극하지 않는다. 다만 김정일 시대에 ‘설화’를 활용하여 직접적 감정자극을 모색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음악을 활용해서 간접적 감정자극을 모색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다음 예술영화를 ‘주제가 선율’과 ‘감정어휘’로 분석하면,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모두 최고 지도자에 대한 애희(愛喜)의 강박이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다만 김정은 시대에 애(哀)가 김정일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구(懼)와 노(怒)가 증가하는 양상이다. 김정은 시대 애(哀)의 감소는 신파적 정서를 탈피하고자 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노(怒)의 증가는 북한 당국의 ‘자본주의 문화 봉쇄’지침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3장에서는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비교하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규명하였다.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는 공통적으로 동화를 통해 관객의 능동성을 소멸하며, 북한 주민이 스스로 죄책감을 갖도록 유도하고, 집합기억을 재생산한다. 북한 주민의 능동성 소멸은 북한 당국이 주조하는 감정의 내면화를 가져온다. 또한 죄책감은 북한 주민의 특정한 행동을 방지하는 데 유용하며 집합기억은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하고 일체감을 부여하는 데 유용하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과거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와 더불어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죄책감과 집합기억을 중요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동시에 변화도 분명 존재한다. 김정일 시대에 비해 김정은 시대에 관료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고 영화적 표현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영화를 통해서 볼 때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 북한 당국이 경계하는 것의 본질은 북한 주민의 ‘욕망’이다. 특히 김정은 정권 초기 경계 대상은 ‘개인의 욕망’이다. 김정일 시대에도 개인의 욕망에 대한 경계가 있었지만 김정일 시대 개인의 욕망은 가족이나 직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같이 살고 싶은, 자신의 작업반이 칭찬을 받고 싶은, 가족과 같이 살고 싶은 욕망 등이 김정일 시대 영화에 나타나는 북한 주민의 욕망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의 욕망은 결이 다르다. 김정은 시대 영화에 나타나는 욕망은 ‘가족의 욕망’과 관련되기보다는 ‘나’와 관련된다. ‘나’의 화려한 생활, ‘내가’ 주목받고 싶은 욕망, ‘내가’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다. 이를 단순히 명예욕이나 권력욕이라는 말로 일반화하지 말자. 이것을 모두 포괄하는 보다 근원적인 욕망을 찾는다면 그것은 ‘나의 기쁨’이 아닐까? 인간의 욕망을 ‘욕구에 의식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한다면 인간은 살아있는 한 욕망한다.
김정일 시대 경제난이 김정은 시대에 어느 정도, 또는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해서 ‘기쁨’에 대한 북한 주민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핍이 없어도 더 커다란 완전성으로 이행하고 싶은 욕망, ‘기쁨’에 대한 욕망은 불멸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은 기쁨을 욕망하는 북한 주민, 슬픔을 주조하는 북한 당국, 기쁨에 대한 북한 주민의 욕망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북한 예술계가 엉켜 있는 ‘감정과잉’ 국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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