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 북한의 표준·규격화(KPS)정책과 남북한 통합방안
책 정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9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무역량의 80%가 국제표준 영향 아래서 유통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22년, 미국표준협회는 표준과 기술 규제가 세계무역의 93%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영국표준협회는 2015년의 보고서를 통해 표준의 GDP 성장률 기여도가 약 28.4%에 달한다고 발표하였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 국제표준의 부합화는 업무 효율을 높이고 시장을 개방하며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비용 절감 효과를 충족한다.
1961년 「산업표준화법」 제정과 함께 국가표준제도를 시행해온 남한은 2022년 기준 누적 신규 국제표준 제안 건수 1,234종, ISO 회원 평가 8위, ISO와 IEC의장 간사 등 임원 250명으로 표준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남한은 2010년 IEC 정보통신 산업 분야 국제표준 제안 1위, 2021년에 세계 3대 국제표준화기구 선언 표준특허 누적 건수 부문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남한의 국제표준 부합률은 98.8%에 달한다.
반면 북한은 1950년 국제단위계를 도입하고 남한과 같은 시기인 1963년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표준화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국제표준 부합률은 2015년 재발행된 국가규격 목록 기준 8.6%에 그친다. 북한은 1997년 「규격법」을 제정하여 산업 전반에 규격 보급 사업을 강화하고 규격화 사업을 통해 제품의 질 제고에 힘쓰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제 품질 수준은 당국의 발표에 미치지 못한다. 국제표준화 활동에 있어서는 IEC 정회원 자격 상실과 준회원 자격 재가입, 유라시아국가계량기구연합(COOMET) 장기 미활동에 따른 회원자격 박탈 등 국제표준화 무대에서 부진한 활동을 보였다.
독일연방건설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3년까지 독일의 통일비용 추계는 2조 4,550유로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10%가 표준통일 비용으로 소요되었다. 분단 시기 표준화 협력을 추진하였던 동서독 표준통일 비용의 규모로 분단 78년간 표준 · 규격화 협력이 없다시피 한 남북한의 표준통일 비용을 추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 추진 사업의 목적이 통일비용을 줄이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 전 남북 간 표준화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 후 사회통합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고 사회 안정화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도 남북한 표준화 통합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사회 통합의 초석이 될 남북 간 표준화 협력은 체제와 문화, 사상의 이질화가 심화한 남북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통일에 대한 체념과 불안감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은 공통된 표준 적용으로 모든 산업 기반 시설, SOC 등이 통일된 유일한 표준화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며 사용자인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궁극적인 표준화 통합을 위하여 한국표준협회를 중심으로 정부, 산업계 · 학계 · 연구계의 표준화 전문가 그룹을 구성원으로 거버넌스를 조직해 남북한 표준화 통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남북한 표준 · 규격화 통합의 초기 단계에서 통일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기업, 국제기구가 협력하여 남북한 표준체계 비교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여 연구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한편 정부와 국회는 법적 ·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통합 추진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 경제통일 교육도 확대 실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남북 간 교류 협력 단계에서는 북한의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개발도상국 지원 사업,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동반자지원(Fellowship) 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해 북한 규격의 국제표준화 부합률 상승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국제표준화 활동 의지가 높아지고 남북한 표준화 협력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국가기술표준원의 개발도상국 표준체계 보급 지원, 관련 협회의 단계별 맞춤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 표준화 현황을 분석하여 북한 맞춤형 표준화 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
통일에 있어 표준화 통합의 비중과 가치를 생각하면 남한의 북한 표준화 지원은 소모가 아닌 중장기 투자이며 협력을 통한 상호 발전으로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남북 간 표준 · 규격화가 조금씩 이질화되어 고착 단계에 이른 것처럼 통합에도 전략 수립에서부터 세부 계획 추진, 변수의 대응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지금 바로 남북한이 표준 · 규격화 교류 협력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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