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1939년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학하였다. 우리 현대 교육사에서 그는 이오덕과 함께 참된 교육을 연구하고 교육 혁신을 실천한 두 기둥으로, 참교육 실천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생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1968년 선포한 ‘국민교육헌장’이 우리 교육과 교육자들을 독재정권의 노예로 만든다고 비판하며 1978년에 ‘우리의 교육지표’를 초안했고, 송기숙 전남대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는 투옥되었지만 이 일은 당시 교육자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이 왜 문제가 되고, 참된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커다란 충격이었고, 우리 교육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미국교육사절단 통역을 했고, 학교에서 영어로 강의를 할 정도였음에도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싶어서 문교부에 신청하여 초등학교 교장 자격증까지 받았다. 이후 시골 작은 초등학교로 발령까지 받았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해야 하여 포기했다. 4.19 혁명 뒤에는 문교부 수석장학관을 지냈고,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세브란스병원 부설 소아재활원 부속초등학교장을 맡기도 했다. 문교부 장학관과 대학교수 시절, 기회가 되는 대로 초중등학교 현장을 꾸준히 방문하고 교사들과 교류했다. 1978년 감옥에 있을 때 이오덕의 책을 읽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국 교육이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출옥한 뒤에도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으며 참된 교육 개혁을 위해 헌신했다. 생애 마지막에 광주대학교 총장에 봉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새교육개론』(1950), 『숙희에게-미국과 그 학교』(1954), 『성인후보생의 항변』(1964), 『한국 교육의 증언』(1965), 『선생님께』(1976), 『스승은 없는가』(1977), 『제자여 사랑하는 제자여』(1981), 『인간 회복의 교육』(1982), 『분단시대의 민족교육』(1985), 『사랑을 위한 반역 (1985) 등이 있다. 1986년 후학과 동지들로부터 화갑기념 논문집 『민족교육의 반성』을 헌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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