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평북 위원 출생으로 한국전쟁 시기에 월남하여 195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와 동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인제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서냉전시대인 1960년대에 육사 교수로서 「공산주의 비판」과 「대공전략론」을 강의했으며, 1970년대에 합참과 육군본부에서 자주국방을 위한 「율곡계획」을 수립하는 등 안보정책 분야에 기여했다. 28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뒤 1980년대에 나이지리아 주재대사, 오스트레일리아 주재대사와 외교안보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동서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초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와 통일원 차관을 역임하며 남북협상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등을 채택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5년 초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으로 김대중 이사장과 인연을 맺어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1998~2003)에서는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역을 역임하며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설계하고 시행하는 사령탑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미국 및 일본과의 대북정책 공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다. 2000년 6월에는 김대중 대통령 특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데 기여했다. 2002년 4월, 2003년 1월에 대통령 특사로 다시 평양을 방문해 남북관계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4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세종재단 이사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현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안보 분야 근무 시에는 보국훈장 삼일장과 보국훈장 천수장, 통일분야 근무 시에는 황조 근정훈장과 청조 근정훈장을 받았다. 또한 한겨레통일문화상, 민족화해상(민화협), 심산상(김창숙), 임창순상 (청명재단)과 백범통일상을 수상한 바 있다.
대표 저서로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5년을 다룬 《피스메이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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