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오

책 정보
탈북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을 묶은 공동 소설집 『기다려 주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분단 현실을 통과해 온 이들이 문학이라는 언어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지원 아래 마련된 이 공동 소설집은 북한에서 출발해 남한으로 이어지는 삶의 경로를 서사로 기록하는 한편, 탈북문학이 한국문학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 묻는 문제의식을 함께 품고 있다.
서문에서 방민호 교수는 탈북문학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다. “탈북문학은 난민문학이며, 디아스포라 문학이자, 저항문학이고, 반체제 문학이다.” 그리고 이 문학이 “얼마나 어디까지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는가는 한국문학의 중요한 새 가능성을 향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탈북문학은 북한을 소재로 한 문학이 아니라, 삶의 이동과 체제의 균열, 그리고 기억의 정치학이 동시에 작동하는 문학적 장르라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은 바로 그 문제의식 속에서 서로 다른 결을 보여 준다. 곽문완의 「프놈펜 러브 스토리」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체제가 개인의 감정과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가장 사적인 감정이 권력의 구조 속에서 강요되고 변형되는 세계는, 독자에게 체제의 메커니즘을 서사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김정애의 「대덕산 초소에서」는 북한 사회에서 당원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 준다. 신분 상승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당원’이라는 위치는 정치적 지위를 넘어 삶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장치가 된다. 이 작품은 체제 속 개인의 욕망과 좌절을 차분한 서사로 풀어낸다.
도명학의 「자가용 사회주의」는 북한 사회의 일상적 모순을 풍자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사회주의 체제의 이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작품은 웃음과 씁쓸함이 뒤섞인 장면들을 통해 북한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송시연의 「이 모든 슬픔」은 탈북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북한을 떠났다고 해서 고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 또한 또 하나의 낯선 환경이며, 그 안에서 개인은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 작품은 외로움과 인간관계의 긴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지명의 「기다려 주오」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작품으로, 분단을 넘어 이어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탈북 후 트럭 화물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진호가 북쪽에서 사랑했던 은정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기다림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 다섯 편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정서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체제와 개인 사이의 거리, 북한과 남한 사이의 거리,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 이 소설집은 바로 그 거리 위에서 쓰인 이야기들이다.
방민호 교수는 이 작가들의 글쓰기 조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생계를 이어 가면서도 글쓰기를 지속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작가들은 “어떻게든 진실에 가까워지고 또 그것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이 책의 문학적 의미를 넘어, 창작 작업이 마주한 현실적 무게까지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