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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시화: 평양의 시와 인물들

시화총서 7
김점 저자(글) · 장유승 번역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1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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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서글피 탄식하고 엄숙히 두려워하며
관서關西의 한 문인은 천겁 변방의 문학사를 써내려갔다

소외의 땅 평안도 지역문학의 집대성 김점의 『서경시화』
조선 후기 평양 출신 문인 김점(金漸, 1695~?)의 『서경시화(西京詩話)』와 별권의 부록편인 『칠옹냉설(漆翁冷屑)』을 ‘서북지역문인’ 연구로 학위를 받은 고전문학자 장유승이 현대어로 옮기고 주해와 서설을 단 책이다. 고대부터 18세기 초까지 평안도 지역문인과 작품들을 통시적으로 정리하여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적인 지방문학사를 구성했다. 지역의 문학을 정리하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 하에 편찬된 조선시대 시화서로는 이 책이 유일하다.

근세의 한 시절 배척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비운의 땅, 평안도. 김점이 개괄하는 이곳의 문학사는 한마디로 ‘쇠퇴의 문학사’다. 다만 쇠퇴라는 관점은 작가나 작품의 양적 질적 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인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면서 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사라지고, 그 문학적 성취가 사장되고 말았다는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소외야말로 문학의 힘이런가. 김점은 서북의 소외가 심화될수록 오히려 문학의 외연은 확장되는 모습을 통찰해냈다.
우리 고전문학의 정수를 가려 꼽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시화총서시리즈’의 어느덧 일곱 번째 책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점

金漸, 1695~?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중홍(仲鴻), 호는 현포(玄圃)이며 평양 출신이다. 십대 중반에 문산(文山) 허절(許?)을 사사하여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고, 1717년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한 김유(金?)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1721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했으나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다. 이후 성천(成川)으로 이주하여 독서하며 여생을 마쳤다. 80세 무렵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한 채제공(蔡濟恭)을 만났는데, 이 인연으로 채제공이 문집 『현포산인집(玄圃山人集)』의 서문을 써주었다. 문집은 전하지 않고, 『서경시화』와 『칠옹냉설』이 전한다.

번역 장유승

張裕昇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저로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일일공부』, 번역서로 『현고기』, 『동국세시기』 등이 있다.

목차

  • 서설

    〈서경시화 권1〉
    서문(1)|서문(2)|평안도 문학의 기원|우리 문학의 시조 을지문덕|귀신의 도움을 받은 정지상|정지상과 김부식|조연수의 시|조준의 시|이승소의 고향|한극창과 김은서의 시|홍승범의 시|강의봉의 시|임제와 『상영록』|박위의 시|허관의 시|전벽의 시|황윤후의 시|이진의 시|기자의 후손 선우협|김여욱의 시|김여욱과 허관의 우열|오준망의 시|양만영의 시|홍익중의 시|허절이 명성을 떨치다|홍만조가 허절을 인정하다|이만우의 시|이시항의 시|전석지의 시|허필의 시|허절과 김점의 인연|김점의 중부|이인채의 재주|근래 평안도 문인들|평양 이외 지역의 발전|평안도 문인의 대두|『고려사』에 수록된 평안도 문인|김반의 시|어변갑의 급제를 예언하다|어변갑의 시|어세겸의 시|김안국과 김정국|김정과 김필성의 시|최덕중의 시|한우신의 시|변환의 시|변지익의 시|윤영, 김호익, 안헌민의 시|정두평의 시|임익빈의 시|민광보의 시|허휘의 시|강간이 정우량의 인정을 받다|청북 문인의 대두|문신기가 선조에게 인정받다|김현중과 김남욱의 시|중국인 정선갑|유상기가 남구만의 대구를 짓다|평안도의 의로운 선비들|휴정의 시|평안도 승려의 시|낭열의 시|평안도 여인의 시|평안도의 신동|평안도인의 저술|평안도인의 문집|저술을 남긴 평안도인|문집이 있는 평안도인|『동문선』에 수록된 평안도인의 시|역사책에 수록된 평안도인|시호를 받은 평안도인|평안도의 서예가(1)|평안도의 서예가(2): 김학기|평안도의 서예가(3): 홍승범|평안도의 서예가(4): 변환|평안도의 서예가(5): 조흥종|평안도의 서예가(6): 양의원|평안도의 서예가(7): 홍선|평안도의 서예가(8): 김여욱|평안도의 서예가(9): 황재요|평안도의 화가(1): 조세걸, 송창엽|평안도의 화가(2): 김진여, 최만하

    〈서경시화 권2〉
    우리나라 시가의 기원|평안도의 사언시|기자의 〈홍범〉(1)|기자의 〈홍범〉(2)|평안도의 명(銘), 찬(贊), 전(傳)|어세겸의 〈귀물명〉|양덕록의 〈고경명〉|이진의 〈갑을장명〉|이진의 〈추우찬〉|김태좌의 〈수박자전〉|변지익의 〈화납부〉|김정보의 〈귀거래사〉|평양에서 발견된 옛 거울|역사에 기록된 평안도|평안도의 풍습|평안도의 군주들|평안도의 신하들|평안도의 승려들|평안도 문인 총론|글 짓는 법|평안도 문학사|평안도 한시 명구|오언시 명구|칠언시 명구|음률에 올릴 만한 구절|오언시와 칠언시의 기구|오언시와 칠언시의 결구|옛사람의 시를 점화한 시|칠언시를 잘라 만든 오언시|오언시를 보태 만든 칠언시|용사에 뛰어난 시|평안도 고대 문학|천남생과 천남건 형제|장원급제한 평안도인|정지상의 죽음|김학기와 김반에 관한 사실|일찍 두각을 나타낸 평안도인|부자형제가 모두 뛰어난 평안도인|부자가 과거에 급제한 평안도인|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평안도인|조손이 과거에 급제한 평안도인|출세한 평안도인|외직으로 부임한 평안도인|삼장을 통과한 평안도인|평안도 별시의 내력|젊어서 과거에 급제한 평안도인|늙어서 과거에 급제한 평안도인|평안도의 불행

    〈서경시화 권3〉
    을지문덕의 시는 〈맥수가〉에서 나왔다|정지상의 칠언절구(1)|정지상의 칠언절구(2)|정지상의 요체|조준의 기세|어변갑의 효성|어세겸과 이승소의 차이|정승의 기상이 있는 시|이승소의 미인도 시|김안국의 시|한극창, 김명한, 이진, 전벽의 시|전벽의 시(1)|전벽의 시(2)|전벽의 시(3)|전벽의 시(4)|전벽의 시(5)|전벽의 시(6)|이진의 차운시|이진의 절구|이진의 악부시|황윤후의 시|변씨 삼부자의 시|출세한 황윤후와 불우한 변환|변지수의 〈유소사〉|변지익의 시문|변지익의 〈요유복〉|변지익의 〈화납부〉|허관의 시(1)|허관의 시(2)|허관의 시(3)|김여욱의 시(1)|김여욱의 시(2)|허관, 김여욱, 이진의 특색|이진과 김호익이 시구를 다투다|김호익의 득의작|양만영과 정광문(1)|양만영과 정광문(2)|정광문의 시|허절의 시풍|허절의 절구|허절의 기러기 시|허절의 과체시|이만우의 시(1)|이만우의 시(2)|허필의 시풍|허필의 오언절구|허필의 섣달 그믐 시|시능궁인(詩能窮人)|절구시 짓는 법|평안도의 과체시|평안도의 부|을지문덕과 정지상|시는 용병과 같다|평안도 시인들의 비유

    〈서경시화 보록〉
    평양의 어제시|김황원과 이지저의 우열|이색의 부벽루 시(1)|이색의 부벽루 시(2)|정지상의 남포 시|장근과 남효온의 기자묘 시|정경세와 정두경의 기자묘 시|김시습이 평양에서 지은 시|한권과 유강의 기생 시|심수경과 권응인의 선연동 시|윤계선과 권필의 선연동 시|고경명의 백상루 시|이정구가 최립을 칭찬한 시|최립의 연광정 시|정두경의 통군정 시|박엽의 자만시|홍익한의 시|김창흡의 부벽루 시|이색과 김창흡의 시|김유의 부벽루 시|윤봉조, 강박, 오광운, 윤광찬의 제영시|임숙영의 〈통군정서〉|제영에서 뽑을 만한 연구|명나라 조사들의 시|축맹헌의 백상루 시|허국의 망월정 시|조사들의 부벽루 시|조사들의 명구(1)|조사들의 명구(2)

    〈칠옹냉설 상〉
    굳세고 올바름|꼿꼿하고 곧음|절개를 지킴|충성을 다함|부모에게 효도함|형제와 우애함|친척과 화목함|청렴결백함|남다른 행실|장수의 자질|식견과 도량|빼어난 풍채|벼슬한 자취|조짐을 알다|깊은 학문|뛰어난 문장|총명하고 민첩함

    〈칠옹냉설 하〉
    자유롭게 행동함|우스운 이야기|오만하고 방자함|의롭고 호탕함|탐욕스럽고 인색함|서툴고 소박함|용감히 물러남|곤란을 당함|학문이 모자람|포상을 받음|좋은 징조|신성하고 기이함|여러 가지 재주|기생과 풍류|부록

    원문/ 찾아보기

책 속으로

ㆍ필자는 2005년 『서경시화』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2010년 「조선 후기 서북지역문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항상 이 책을 곁에 두고 활용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조선시대 서북 지역의 문화적 지형도를 그리겠다는 필자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며, 무엇보다 연구의 필요 자체를 절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증언하는 조선시대 평안도의 수준 높은 문인 집단의 존재는 연구의 필요를 절감케 했다. -본문 26쪽, ‘서설’ 중에서

ㆍ지금 사람들이 우리 평양에도 나라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문인이 있다는 말을 갑자기 듣는다면 끝내 믿는 자가 없을 것이다. -본문 31쪽, ‘서문(1)’ 중에서

ㆍ아, 우리 평안도 사람들이 금고된 화는 어찌 그리도 혹독한 보복이란 말인가. -본문 44쪽, ‘홍승범의 시’ 중에서

ㆍ평양은 한나라 당나라에 부끄럽지 않으니 천고의 시선들은 뼈마저 모두 향기롭다
-본문 75쪽, ‘우연히 흥이 나서 짓다’ 중에서

ㆍ우리 평안도의 문장가 중에 저술을 남긴 이는 예로부터 매우 드물었다. 간혹 있더라도 몇 권에 불과할 뿐이며, 간행되어 세상에 전하는 것은 겨우 십여 종뿐이다. 만일 지금 게시하지 않는다면 오랜 뒤에 결국 잊혀질 듯하여 일단 그 목록을 아래에 나열한다. -본문 114쪽, ‘평안도인의 저술’ 중에서

ㆍ우리 평안도의 사언시(四言詩)로 『시경』에 들어갈 만한 것으로 〈맥수가(麥秀歌)〉의 경우 그 노랫말은 풍아(風雅)이며, 그 뜻은 〈서리(黍離)〉이다. 〈황조가(黃鳥歌)〉는 사물을 보고 사람에 비유하였으니 원망하는 감정에서 생긴 것이다. 〈공후인(??引)〉은 비통과 개탄을 직접 쏟아내었으니 슬픈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본문 136쪽, ‘평안도의 사언시’ 중에서

ㆍ천 리 떨어진 곳은 환경이 다르고 백 리 떨어진 곳은 습속이 다르다더니, 옛사람의 말이 참으로 옳다. 우리 평양은 태사가 가르침을 펼친 뒤로 문물이 찬란하여 거의 중국과 같았다.
-본문 159쪽, ‘역사에 기록된 평안도’ 중에서

ㆍ우리 평안도의 문장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을지문덕(乙支文德)보다 웅장한 이가 없었고 정지상(鄭知常)보다 호방한 이가 없었다. 한 사람은 비조(鼻祖)요, 한 사람은 정종(正宗)이니, 어찌 논의할 여지가 있겠는가.
-본문 168쪽, ‘평안도 문학사’ 중에서

ㆍ고구려는 무예를 숭상하였으나 문장을 좋아한 임금이 있어 소수림왕(小獸林王)은 태학(太學)을 설치하고 숭류왕(崇留王)은 중국을 배우고자 했다. 신하로는 나라를 다스린 을파소(乙巴素), 음률을 조화한 왕산악(王山岳), 역사를 편찬한 이문진(李文眞), 그리고 수(隋)나라 장수에게 글을 보낸 을지문덕(乙支文德) 등이 있다. 요컨대 모두 어두운 거리의 등불이요, 빈 골짜기의 귀뚜라미 소리와 같다. -본문 216쪽, ‘평안도 고대 문학’ 중에서

ㆍ우리 평양의 산하는 천하의 으뜸으로 기이하고 탁월하니, 범상치 않은 선비가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본문 224쪽, ‘부자형제가 모두 뛰어난 평안도인’ 중에서

ㆍ우리 평안도는 중국과 경계를 맞대고 있어 역대로 특별히 후하게 다독였다. (…) 대저 우리 평양은 온 도에서 손꼽히는 문헌의 고장으로 과거에 급제한 이가 많았으나, 요즘 이후로는 갈수록 앞을 다투지 못한다. 정유년(1717) 시험은 물론 을해년(1695)의 시험과 무신년(1728)의 시험에서도 자갈과 모래처럼 부끄러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본문 232~233쪽, ‘평안도 별시의 내력’ 중에서

ㆍ우리 평안도의 문운(文運)이 불행하니, 처음으로 빌미를 제공한 사람은 김부식(金富軾)이요, 순장(殉葬)한 자는 소세양(蘇世讓)일 것이다. (…) 단지 시구 하나 때문에 당돌한 늙은 물여우 같은 자가 온 도에 해독을 끼쳤으니 이 또한 조물주가 버린 운수이다. 이로부터 뜻있는 선비는 분개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문단은 빛을 잃었다. 게다가 임진왜란 때 오랑캐에게 죽은 선비가 거의 절반이었다. -본문 236쪽, ‘평안도의 불행’ 중에서

ㆍ나는 정지상을 성대한 시기의 종주(宗主)이고 쇠퇴하는 시기의 비조(鼻祖)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록 사람의 힘으로 하는 일이지만, 역시 천지간의 음양이 성하고 쇠하는 묘리(妙理)이다.
-본문 240쪽, ‘정지상의 칠언절구(1)’ 중에서

ㆍ시는 참으로 작은 기예이지만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은 크다. (…) 천고의 여러 궁(窮)자를 독차지했으니, 글자 하나에 눈물을 한 번 흘릴 만하다. -본문 309~311쪽, ‘시능궁인(詩能窮人)’ 중에서

ㆍ시를 짓는 것은 군사를 부리는 것과 같다. 기병이 있고 보병이 있으며, 깃발과 북이 있고 칼과 창이 있다. 앉고 일어서고 때리고 찌르는 절차가 있고, 나아가고 물러나고 흩어지고 모이는 형세가 있다.
-본문 317쪽, ‘시는 용병과 같다’ 중에서

출판사 서평

김점과 『서경시화』

『서경시화』의 편자 김점은 열예닐곱 무렵 평안도 지역에서 시명(詩名)이 높았던 허절(許?)을 사사하여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1717년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한 김유(金?)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고, 1721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했지만, 끝내 문과에 급제하지는 못했다.
그가 지역문학 정리 작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료 수집에 착수한 것은 비교적 젊은 시절의 일이다. 1728년에 쓴 『서경시화』의 첫 번째 서문에서 그는 평양 문인들의 문학적 성취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장차 이들의 행적이 민멸될 것을 우려하여 이 책을 편찬한다고 밝혔다. 이해 일차적으로 편찬을 완료했으나 수록 대상이 평양 문인에 한정되었다는 점을 스스로 문제 삼고, 평안도 일대로 범위를 넓혀 5년 뒤인 1733년 증보를 마친다.
『서경시화』는 지역문화 전통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편찬된 저술이면서도 그 초점이 철저히 ‘문학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대개의 시화서는 일화잡기류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고, 순수한 문학비평만으로 구성된 경우는 드문 편이다. 반면 『서경시화』는 조선 후기의 어떤 시화서와 비교하더라도 전문적인 문학비평서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특히 『서경시화』에 실려 있는 문인과 작품의 상당수는 다른 문헌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서 빛을 얻는다.

소외의 공간에서 잉태되는 문학

조선시대 평안도는 소외된 지역이었다. 평안도인은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중앙 진출이 쉽지 않았으며, 조선 후기까지도 고위직에 오른 인물은 극히 드물었다. 사실 경제적ㆍ문화적 격차의 심화에 따른 지방 소외와 이로 인한 갈등은 조선 후기의 일반적 현상이다. 그러나 서북 지역의 소외는 이익(李瀷)이 “국토의 절반을 잘라 버려두고 쓰지 않는다”고 했듯 그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했으며, 그 정도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서북 지역이 경제적ㆍ문화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도 이러한 현상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평안도 지역에 문풍(文風)이 진작되는 현상에 대한 조정의 입장도 매우 부정적이었다. 본디 서북 지역에 기대된 것은 문신(文臣)이나 유현(儒賢)의 배출이 아니라 국방을 담당할 인재의 양성이었다. 때문에 서북 지역에서 문교(文敎)의 진흥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서북인이 문학에 종사하는 것은 유생이라는 명칭을 가탁하여 부역을 피하려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문무가 균형을 이룬 상태라면,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인재 양성ㆍ수용 정책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인이 천시되는 문신관료 위주의 사회에서 문신으로 진출하는 길을 차단하고 오로지 무예만을 강권한 것은 문제다. 서북 지역의 문교 진흥과 서북인의 조정 진출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인물들조차 이러한 원칙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조선 말기까지 서북인에 대한 소외는 해소되지 않았다. 여기에 체제 모순의 심화로 인한 폐단이 더해지면서 누적된 불만은, 익히 알다시피, 결국 홍경래의 난으로 폭발하기에 이른다.

여기가 우리 문학의 기점
지역정체성의 환기

그리하여 『서경시화』는 소외에서 비롯된 지역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지역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실 평안도 문인들은 이른 시기부터 지역적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지역의 위상을 제고하고 유구한 지역문화 전통을 자부했다. 평양은 단군과 기자(箕子)의 유적이 남아 있는 문명의 발상지라는 점이 강조되었는데, 『서경시화』 역시 평양의 역사가 단군으로부터 비롯되며, 기자가 평양에 도읍한 이후 본격적인 문명의 개화가 시작되었다고 서술한다. 이에 따라 기자의 「맥수가(麥秀歌)」를 최초의 평안도 문학으로 규정하고, 기자의 「홍범(洪範)」 역시 문학사에 포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아울러 「황조가(黃鳥歌)」, 「공후인(??引)」의 배경설화를 소개하고, “우리나라 시가의 도는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여, 조선 문학의 근원이 평안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김점은 책에서 평안도를 지칭할 때 항상 ‘우리 평안도[吾西]’라 하고, 평양을 일컬을 때에는 ‘우리 평양[吾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의 지역문화에 대한 애착과 지역문인들에 대한 뚜렷한 동류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당색에 얽매여 비평의 균형을 상실한 일반적인 조선 후기 시화와 달리, 패거리의식에 매몰되지 않고 때로 혹독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균형 잡힌 비평적 자세는 기본이었다.

『서경시화』의 문학사 인식

김점은 평안도의 문학사를 대략 세 시기로 나눈다.
첫 번째 시기는 고대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다. 기자, 을지문덕(乙支文德), 정지상(鄭知常)으로 이어지는 지역문학의 전통이 확립되는 시기다. 김점은 기자로부터 비롯된 평안도 문학의 전통이 고구려에 이르러 을지문덕에게 계승되었으며, 고려에 와서는 정지상의 출현으로 높은 성취를 거두었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이전 평안도 문학에 대한 자료가 극히 부족했기 때문에 문학사에 적지 않은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에 김점은 평안도인으로 알려진 이들의 문인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전하는 시문이 없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학사의 연속성과 볼륨을 확보하고자 했다. “위만(衛滿) 또한 이곳의 문사”라고 규정하고, 고구려의 여러 군신(君臣)들과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아들들까지 지역문인의 범주에 포함시킨 까닭은 이 때문이다. 김점의 이러한 문학사 인식에 대한 타당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평양을 위시한 평안도 일대의 작가와 작품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구려로부터 이어지는 북방사 전반까지 시야를 확대함으로써 지역문학사의 연속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서경시화』의 문학사 인식이 지니는 특징적 면모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시기는 조선 초기다. 이 시기의 평안도 문인들은 조정에 진출하여 관각문인(館閣文人)으로 활약했다. 조준(趙浚), 이승소(李承召), 어변갑(魚變甲), 어세겸(魚世謙), 김안국(金安國), 김정국(金正國) 등 저명한 문인들이 이 시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조선 중기 이후의 평안도 문인과 달리 청현직으로의 진출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심지어 정승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김점은 이들의 문인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한다. 특히 조선 초기 평안도 문인들에 대한 기술에서 각별히 강조하는 점은 관각문인으로서의 위상이다. 김안국이 사신으로 온 일본 승려 붕중(?中)과 수창하여 그를 굴복시킨 일을 비롯해, 이들이 대외적인 활약으로 화국문장(華國文章)의 솜씨를 발휘한 일을 강조했으며, 이들의 시풍과 작품에 대한 품격비평 역시 대각의 웅혼한 기상과 화려한 풍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세 번째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로부터 편자 김점의 당대까지다. 지역의 경제적ㆍ문화적 발전에 따라 문학 담당층이 확대되어 지역별ㆍ계층별로 수많은 문인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을 기점으로 평안도인의 소외가 심화됨에 따라, 이들은 대부분 불우한 평생을 보내야 했다. 김점은 당대 평안도 문인들이 비록 현달(顯達)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이전 시대 문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문학적 성취로 지역문학의 전통을 잇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동시기 평안도 문인들의 배출을 두고, “평양은 한나라나 당나라에 부끄럽지 않으니, 천고의 시인들의 뼈마저 향기롭다. 풍월은 본디 정해진 주인이 없거늘, 어찌 모두 정지상에게 맡기랴”라는 시를 지어 『서경시화』에 수록했다.

서북, 관서, 평안도
그리고 평양의 시와 인물들

평안도. 한반도 서북(西北)의 땅이자 철령관(鐵嶺關) 서쪽의 관서지방. 이곳의 중심은 언제나 평양이었다. 사실 평양은 물산이 풍부한데다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매우 이른 시기부터 도시적 기능이 발달했다. 이미 5세기부터 고구려의 수도로서 번영을 구가했으며, 고려의 역대 국왕들 역시 평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주 이곳을 순행했다. 고려시대의 평양은 상업의 중심지이자 국제무역항으로서 대중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으며, 이로써 조성된 경제적 기반은 평양의 문화수준을 향상시켰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평양은 중국을 오가는 사행이 반드시 경유하는 곳으로서 사행무역과 함께 유흥문화가 발달했으며, 여전히 상업의 중심지로 활기를 띠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 평양의 경제적 번영은 생산적인 문화 발전으로 이어졌다. 상당한 수준에 이른 평양의 출판문화는 지역문단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또한 중국과의 교통로에 위치하여 서적의 수입과 유통도 이루어졌다. 『서경시화』의 탄생은 이러한 문화적 역량의 축적과도 무관치 않으리라.
아울러 『서경시화』와 이 책에 함께 묶인 『칠옹냉설』은 당대 평안도 땅과 인연을 맺은 여러 인사들의 진기한 행적을 품고 있다. 이들의 다양한 인품과 매력을 따라 펼쳐지는 문학적 에피소드들은 당대 평안도라는 시공의 문화사를 다시 한 번 흥미롭게 채색한다.

[시화총서: 안대회 교수가 추천하는 시화, 고전문학의 정수]

『소화시평, 조선이 사랑한 시 이야기』
홍만종 지음|안대회 옮김|3만 원
고대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우리 한시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빼어난 작품들을 골라 짧고 인상적인 비평의 언어를 동원하여 설명해놓은 농축된 저술이다. 이 책 한 권으로 한시사에 빛나는 주요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사의 큰 흐름이 단숨에 읽힌다.

『형설기문, 한밤에 깨어 옛일을 쓰다』
이극성 지음|장유승ㆍ부유섭ㆍ백승호 함께 옮김|3만원
근기 남인의 핵심가문 출신 지식인이었던 이극성이 펴낸 시화집이다. 17세기 이후 정국에서 배제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근기 남인계 문인들에 대한 수많은 기록과 당대의 문화적 지형도를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전거들이 수록돼 있다.
*2017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용등시화, 유배지 등불 아래서 쓰다』
정만조 지음|안대회ㆍ김보성 옮김|1만9천 원
고종 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저명한 시인이자 관료였던 정만조가 쓴 시 비평집. 용나무 창가 호롱불 아래서 쓴 시화라는 제목 하나만으로도 적적한 섬 한가운데서 등불을 밝혀놓고 글을 쓰는 문인의 애틋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필원산어, 글밭에 흩어진 이야기』
성섭 지음|장유승ㆍ부유섭ㆍ백승호 함께 옮김|3만8천 원
조선 후기 문인이자 영남 남인이었던 성섭의 시화로, 그의 문학적 역량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비평서다. 성섭은 당색을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안목을 갖추고, 당대 문단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영남 문학의 과거와 현재를 소상한 기록으로 남긴다.

『시평보유, 못다 한 조선의 시 이야기』
홍만종 지음|안대회ㆍ김종민 외 옮김|3만5천 원
『소화시평』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을 보완할 목적으로 쓰여진 보유편이다. 저명한 시인에서부터 외면당하기 쉬운 시인까지 수많은 작품을 다시 검토하고 추슬러서 새롭게 엮었다. 『소화시평』 이후 15년, 한층 깊어지고 넓어진 한시 비평의 풍격을 엿볼 수 있다.
*2020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창해시안, 시를 꿰뚫어 보는 눈』
이경유 지음|장유승ㆍ부유섭 함께 옮김|3만2천 원
조선 후기 문인 이경유의 시화집으로, 시 비평과 산문 비평, 야사 및 일화가 혼재된 대개의 시화들과 달리, ‘한시 비평서’의 성격이 뚜렷하고 중국의 시들에 대한 비평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단연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청비록』 이덕무 지음|김영진 옮김|출간 예정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시화ㆍ시평집으로, 한중일 교류의 현장과 함께 박지원과 박제가 등 당대 쟁쟁한 문인들에 대한 평가까지 담고 있다.

『파한집』 이인로 지음|안대회 옮김|출간 예정
고려 중기 문신인 이인로의 시화·ㆍ잡록집. 우리나라 시화집의 효시이자 우리네 고전시학 분야에서 귀중한 연구 자료다. 명유들의 시편과 그 시평을 통해, 시는 마음에서 근원한다는 믿음을 지녔던 저자의 문학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한집』 최자 지음|정선모 옮김|출간 예정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충하는 입장에서 최자가 엮은 것으로 『속파한집』이라고도 불린다. 양에서 그의 배가 되거니와 내용도 다채로워져 다른 어느 시화 문헌들보다 그 문학론이 풍요하다.
* 시화총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집니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55504727
발행(출시)일자 2021년 06월 20일
쪽수 600쪽
크기
151 * 221 * 40 mm / 843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시화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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