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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한성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짧은 미국 유학생활에서 돌아와 순전히 사회학을 공부하려고 성공회대학교에 다시 진학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실현」, 「전쟁사회와 북한의 냉전 인식」 등이 있으며 한국전쟁과 남북한 사회변동, 국가와 시민사회,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목차
- 책머리에 7
제1장 인민과 근대국가
북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23
인민과 근대국가 28
집단주의 인민 28 l 근대국가와 그 성원 48
제2장 동원
군사위원회와 전시동원 71
군사위원회와 인민군 징병 71 l 전시 노력동원과 물자동원 79
여성과 농민 동원 88
전시 여성동원과 노동계급화 88 l 공동작업과 농업협동경리 등장 92
선전선동사업과 동원 정치 96
선전선동사업 96 l 설득과 강압: 처벌과 보상 106
주민통제와 요시인 관리 116
촘촘한 주민감시 116 l 요시인 관리 125
맺음말 129
제3장 점령과 통치
점령과 준비되지 않은 북한 통치 135
남한의 점령정책 135 l 미군의 점령정책과 남한과의 갈등 145
정치적 교정작업과 학살 154
정치적 교정작업 154 l 주민학살: 정치의 연장 164
공중폭격과 반미 176
폭격: 파괴와 초토화 176 l 초토화의 심리적 공황과 반미인식 189
애국주의와 반미정치: 통합과 위기 대응 202
반미 애국주의 교양 202 l 인종주의와 자기율법 211 l 통치와 위기 대응으로서 반미 220
맺음말 229
제4장 국가 위기와 학살
전세의 역전과 로동당 위기 235
자기 부정: 로동당 붕괴와 당원이탈 235 l 당원증: 충성의 징표 241
전시 형법과 반동분자 처리 247
형벌의 역사적 기원 247 l ‘일시적 강점’과 반동분자 처리 256
사회적 처벌과 군중여론 266
군중심판과 두문 266 l 군중여론: 불안과 불신 275
사실의 조합과 진실: 학살 280
‘내부의 적’ 280 l 신천학살: 좌우익 보복과 미국 295
맺음말 304
제5장 규율
전체를 위한 하나의 교육 309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309 l 학교: 규율의 시작 315
노동하는 인민과 자각적 규율 321
노동하는 인민 321 l 자각적 규율과 헌법적ㆍ도덕적 의무 330
로동당 규율과 당원 341
당 규약과 당증수여사업 341 l 당 단체 조직 강화 347
인민군인: 순종하는 몸과 정신 353
군인선서: 애국의무와 인민보위 353 l 몸과 정신의 규율 357
맺음말 364
제6장 ‘당-국가-군대’와 인민의 탄생
여성과 농민의 ‘국가’ 인식 369
여성 해방과 ‘나라의 주인’ 369 l 농민의 단결과 동화: 집단성 377
당의 군대와 정치사상교양 392
인민군 정치사상교양 392 l 로동당의 군대: 군내 당 단체 조직 402
인민과 ‘당-국가-군대’ 414
로동당원의 ‘당과 국가’ 414 l 모범 군인의 탄생과 인민 423
1958년 정치사회 변동과 분단국가 인민 432
공산주의 교양과 ‘집단 주체’ 432 l 1958년 정치사회 변동과 민족주의 등장 441
맺음말 457
제7장 결론: 분단정체성을 넘어서
인민의 탄생 463
인민주권의 한계와 민족주의 467
분단정체성을 넘어서 473
미주 477 l 참고문헌 587 l 찾아보기 623
책 속으로
인민은 사회발전에 진보적 역할을 하는 계급과 계층을 포괄하는 근로대중을 가리키는 사회역사적 개념으로서 계급성을 강조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주권의 원천이자 국가가 규정하기 이전 사회와 역사의 주체로서 보편적 인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에 비해 공민은 권리와 의무가 국가의 헌법과 법률에 규정되어 적용을 받는 법적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인민 속에는 국민이나 공민보다 평등한 의미를 갖는 사람이 있다. 보편적으로 인민을 가장 폭넓게 정의하면 인종ㆍ민족ㆍ국가와 상관없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이는 정치 지도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지도자를 제외한 사회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의미는 체제(지도자)에 대비되는 민중이라고 볼 수 있다. (31쪽)
이승만은 남한 정부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으나 유엔은 한반도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남한의 법적 평가와는 전혀 다르게 판단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는 아니다. ‘대한민국’이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실이 다르다. 1948년 12월 12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유엔총회 결의 제195호 Ⅲ’(대한민국의 승인 및 외국 군대의 철수에 관한 결의)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정부인 것은 북위 38도선 이남지역에서만 선거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서 본다면, 선거가 실시되지 않은 38도선 이북지역은 유엔결의에 관한 한 ‘공백지대’로 남겨진 것이었다. 유엔결의안 제2항에 대한 법적 해석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남한에서 합법정부이며 한반도에서 그런 정부는 대한민국뿐이라는 뜻이다. 남한 주권이 법적으로 북위 38도선 이북에까지 미치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표현한다면, 이것은 유엔결의에서 표명한 대한민국의 정의와 다른 의미가 된다. 1950년 10월 30일 이승만이 ‘평양수복’ 방문 때 대통령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가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 조항 때문이었다. (136~138쪽)
북한 주민들이 유엔군과 남한 정부 통치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것으로 흔히 전쟁 중 많은 북한 주민이 월남한 것을 그 예로 든다. 그러나 월남의 주된 이유는 남한 통치에 대한 좋은 평가라기보다는 공습과 원자탄의 피해에 대한 두려움, 강제이주 등이었다. 기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남하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공포감이나 신변 안전에 대한 열망 등으로 남쪽으로 이동했다. 북한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원자탄에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고 미군 부대에서는 자기들 주둔지역 내에 있는 복무적령기의 남자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남한이나 미군이 북한 점령기간 중 특별하게 북한 주민들의 충성을 자아내게 한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민사행정 난맥상 외에도 후퇴시기에 피난민을 위한 정책도 아주 혼란스러웠다.
국군과 유엔군은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던 데다 철저하지도 못했던 북한 점령정책이 있었다. (162~163쪽)
주민들의 분열과 분화는 분단정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자 남북한 정권에 귀속하는 공동체 정체성을 만드는 현상이었다. 남한 국민 또는 북한 인민으로서 경계 짓는 조치가 바로 학살이라는 행위이고, 전쟁은 타자인 피학살자를 가장 극단적으로 의식하는 시기였다. 이와 같은 공동체 구성원 형성에 내재한 것이 ‘타자의 설정과 배제’ 과정이다. 동일민족인 남북한이 ‘우리’와 ‘적’으로 나뉘고 학살의 광기를 겪으면서 국민과 인민으로 타자화되었다.
피점령 당시 인민을 버린 북한 체제의 정치적 무책임은 주민학살을 방조하는 것이었고, 그 땅을 점령한 국군과 우익치안대는 자신들의 지배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살해를 저질렀다. 해방 후 남북한 정부수립은 이념대립으로 인한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이었고, 전쟁 때 점령지 민간인에 대한 처형은 두 개의 국가에 복속할 정치공동체 구성원을 획정하는 수단이었다. (175쪽)
출판사 서평
한국전쟁과 북한 사회ㆍ인민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
북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북한 인민(국민)으로 형성되었는가를 전쟁 사회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 한국전쟁의 영향과 결과, 북한 사회주의 국가건설 과정을 인민정체성, 미국과의 문제,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중심으로 살펴봄과 동시에 현재적 관점에서 북한의 선군정치와 전쟁 사회의 역사적 배경, 정치적 함의 등을 폭넓게 규명한다.
『전쟁과 인민』은 우리 학계가 도달한 현대 한국 연구의 뚜렷한 성취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수준 높은 이론과 분석틀, 객관적이면서 비판적인 시각, 방대하고 깊이 있는 일차 자료, 촘촘하고 두터운 사실과 내용, 논리적이며 날카로운 분석 측면에서 이 연구는 한국전쟁과 북한 연구의 개가로 불릴 수 있다. - 박명림(연세대학교 교수, 정치학)
북한에 관한 책은 적지 않다. 그러나 진정 북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은 드물다. 북한 사회주의 인민의 전쟁 체험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그들이 왜 국가와 깊은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개인의식이 희박하고 집단주의에 빠져 있는지, 왜 그토록 민족의식이 강한지 잘 보여준다. 이 책을 남북의 상호이해와 평화공존의 길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권한다.
- 김성보(연세대학교 교수, 사학)
오늘의 북한을 바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동원과정에서 형성된 인민정체성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이 책은 북한 사회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인민’정체성이 북한 주민의 참여와 지지의 산물이라는 점은 우리가 북한의 집단주의와 반미노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 김동춘(성공회대학교 교수, 사회학)
▶ “우리 학계가 도달한 현대 한국 연구의 뚜렷한 성취”
한국전쟁 발발 62주년에 발맞춰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들은 왜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으며 반미를 국가정책으로 내세우게 되었는가.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인민’이라는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 것인가. 책은 대단히 방대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이런 물음에 충실한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연구의 객관성을 중시한 결과다. 그동안 한국전쟁이나 북한과 관련한 책들은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986, 일월서각),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1999, 창비) 같은 외국 학자들의 연구를 비롯해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 나남),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002, 나남),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2000, 개정판 2006, 돌베개), 박태균의 『한국전쟁』(2005, 책과함께), 정병준의 『한국전쟁』(2006, 돌베개),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2010, 돌베개) 등 국내 학자들의 연구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전쟁과 인민』처럼 북한 사람들과 북한 사회에 방점을 찍고 수행된 연구는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이 기존 책들과는 일정한 차별성을 지니는 부분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더욱 다면적이고 총체적인 이해의 노력이 확산되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가 활발해지는 데 이 책은 의미 있는 도움을 줄 것이다.
▶ 북한을 이해하는 창, 사회주의 체제 성립과 한국전쟁
저자는 이 책에서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개의 주요 창으로 사회주의 체제 성립과정과 한국전쟁을 꼽고 그로부터 논의를 전개해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 후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한 북한에서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범위나 기준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식민지에서 광복이 된 이후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과거청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선시해야 하는 기준은 계급관계였다. 필연적으로 북한 국가건설의 주역은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 계급으로 한정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세력이나 지주에게는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남한과 확연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사회적ㆍ경제적 계급에 기초한 이러한 기준은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국가의 정당한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부여해 북한 체제가 내세우고 지향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따라 식민지 봉건의식을 타파하고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계급투쟁이 진행되었으며, 인민들은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으로 개조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이라는 전시(戰時)는 무엇보다도 군사적 전일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지배체제를 요구했다. 전시권력은 통치자의 체제유지나 새로운 재생산을 위한 헤게모니 창출 노력과 함께 미시적인 수준에서 인민정치를 확대한다. 북한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인적ㆍ물적 자원의 동원과 주민학살, 피점령, 전시규율, 반혁명 상황 등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 사회변화, 주민들의 삶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개전 초기 남한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던 북한은 미국이 참전한 이후 38도선 이북지역을 오히려 점령당함으로써 체제가 몰락할 위기를 겪었다. 이 위기는 해방 이후 성취한 친일반민족자 청산과 토지개혁, 남녀평등법 시행 등 민주개혁 조치를 위협하는 반혁명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 정권은 주민감시와 통제, 규율을 강화하고 내부의 적과 반동분자를 처리해나갔다. 더불어 군인과 로동당(원)을 중심으로 민청과 사회단체 등을 통해 중앙권력을 말단 지방에까지 침투시키는 전일적 체제를 구축해나갔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인민의 모습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전 상황에 더해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 학살은 인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북한 당국의 조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한 주민들이 미국에 대해 갖는 태도와 반응 그리고 반미를 자기 것으로 취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은 바로 몸서리쳐지는 전쟁 일상을 통해서였다. 몸에 각인되는 전쟁 체험은 그 어떤 인식이나 주의ㆍ주장보다 강렬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북한 인민들이 반미인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상적ㆍ심리적 과정이 전쟁 체험에 있다고 보며, 또한 이것이 애국주의와 결합해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민족주의)로 발전하는 데 주목한다.
▶ 남한은 ‘국민’, 북한은 ‘인민’, 그 불편한 이중주
‘인민’이라는 북한의 정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국가건설과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이라는 비교적 긴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의 확대, 생산관계의 협동화 그리고 인민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인민의 구체적인 모습 또한 형성되었는데 해방과 정부수립, 전후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완료되는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일정한 정형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계급투쟁과 생산관계의 협동화 완료 그리고 공산주의 교양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부터였다.
근대국가 수립과정에서 구성된 국민(nation)과 인민(people)의 관계를 살펴보면,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인민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타난 개념은 인민이 국민보다 보편적인 사람, 자연인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민이라는 개념은 북한 정부수립 이전에 이미 체계화하고 있었다. 최창익(북한의 부수상을 지낸 ‘연안파’의 거두)은 “역사는 인민의 힘으로 추진되는 것이고 역사발전에 있어서 언제나 인민들이 그 주동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발전 주체로서 인민을 이해하면서도 지도자의 영도를 강조해 인민을 수동적인 동원대상으로 파악했다. 이는 인민을 “역사발전의 주체”로 상정하면서 그 범주와 역할을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인민투쟁사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민은 정부(체제)에 대응하는 것이고, 인민과 정권의 관계는 위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남한 헌법에 명시된 ‘국민’ 주권에 대해 살펴보면, 유진오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할 때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라고 초안을 작성했는데, 논의과정에서 “국민에게 있다”로 바뀐 사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민이라는 말은 구대한제국 절대군주제하에서도 사용되던 말이고, 미국 헌법에 있어서도 인민(people, person)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citizen)과는 구별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좋은 단어 하나를 공산주의자에게 빼앗긴 셈이다.
국민과 인민 개념은 분단국가 수립과정에서 정치적 함의를 지닌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민은 냉전과 이데올로기 대립, 남북 분단의 우리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말이다. 북한에서 인민은 국가권력에 종속되는 국민이 아니라 “인간 평등의 원초적 정서”가 포함된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대중적이고 기층민중적인 성격”과 “반엘리트주의적 동원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이 이런 인민적 의미를 실현하는 데에는 현재까지 실패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북한 인민들은 개인적 주체를 억압하고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된 탓에 개인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구성되는 공공영역이 최소화되고 국가와 개인이 소통하는 시민사회 형성이 매우 협소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시민사회 미형성이 현재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의 기원이며, 향후 정치적 균열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 북한도 처음부터 ‘반미’는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 해방에 대해 북한 지도부는 소련과 미국의 역할을 같이 인정했다. 1945년 10월 13일 북한의 한 보고서에는 “조선의 현재 형편은 첫 임무로 반팟쇼전선을 굳게 한다는 것이나 조선에는 사회주의 국가 쏘련과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함께 들어와 조선을 해방 주었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이처럼 일제 강점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은 일방적인 투쟁과 타도의 대상이 아니었다. 해방 초기인 1945년 후반 북한은 미국에 대해 나쁜 평가를 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국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미 제국주의자들을 내칠 수는 없었다. 어찌됐건 미국은 그토록 증오하던 ‘일본’을 물리친 나라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미인식은 1946년 이후 적대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은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이었으며 북한은 이를 미국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이후 1948년 2월 유엔의 남한지역 단독정부 수립 결정으로 미국에 대한 비난은 한층 높아졌다. 북한의 반미인식은 남북한 분단과정과 함께 진행되었다. 한반도 분할점령이 공식화되고 남북에 분단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며, 반미는 인민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김일성 정권에 대한 지지를 수렴하는 매우 강력한 정치적 통로로 이용되기에 이른다.
▶ 책의 구성과 차례
이 책은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1945년부터 진행된 북한 국가건설과 사회주의 체제가 갖춰지는 1950년대 말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이 책의 주제에 관한 개괄로서 인민과 근대국가에 대한 이론과 연구방법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2장은 인민형성을 매개하는 범주로서 동원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3장은 이북지역의 피점령과 반미인식 형성과정을 다룬다. 4장은 반혁명 상황과 이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대책으로서 반동분자 처리에 주목하여 논하며, 5장은 학교와 로동당, 군대에서 인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규율을 통해 살펴본다. 6장은 인민형성 과정을 로동당원과 군인, 노동자, 농민, 여성으로 나누어 고찰하며, 7장은 이 책 전체의 결론으로서 분단정체성의 극복과 통일국가의 전망이 시급함을 역설한다.
<책속으로 추가>
평양에서 폭격을 겪은 인민군 출신 김진계는 1953년 2월 초순 야간에 미군 폭격기 4대가 편대를 이루어 마을 상공을 빙빙 돌면서 폭탄을 줄줄이 투하하는 것을 목격했다. (중략)
김진계 자신은 “이렇게 무차별 폭격을 하다니 참으로 치가 떨리고 분노가 솟아났다. 정말로 미군 비행사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공중폭격으로 주민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어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미국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이었다. 이는 북한 체제에 동조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월남민 중에도 미국에 대한 전쟁 책임과 정치적 문제에 대해 비난하는 경우가 있었다.
북한은 초토화된 땅의 피폐함 그 자체로 바뀔 운명이었다. ‘미국’에 대한 적대적 관계는 이런 원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북한에 사는 주민들이 느낀 감정 중 첫 번째는 “이런 무차별 폭격으로 북한 주민들이 대량 살상되었던 까닭”에 북한 주민들은 “미국이라면 치를 떨며 증오한다”는 사실이다. 인민들은 전쟁이 남한 군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군과 벌이는 전쟁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무차별 폭격과 같은 전쟁 체험은 종교인들에게도 미국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조선기독교연합회 조기준 목사는 “조선전쟁 중에 숭미사상이 무너져갔다. 그 무차별할 정도의 공격을 보고 숭미는 잘못된 것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의 이런 인식은 전쟁 경험이 반미반제적 성격을 강화하여 내적 동질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신론자인 김일성 역시 1953년 12월 18일 기독교인들이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힌 숭미사상을 전쟁을 통해서 버리게 되었다고 했다. (199~200쪽)
미군이 남한이나 북한지역에서 저지른 학살에는 무엇보다도 인종적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 극동사령부는 ‘전쟁범죄’를 적군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만 국한시켰다. 여기에 대해 1950년 맥아더 사령부에서 전쟁범죄 조사를 총지휘한 육군법무관 하워드 레비(Howard Levie) 대령은 한국전쟁과 다른 전쟁에서 미군 사령관들은 눈 뜬 장님처럼 행동했다고 술회했다. 레비 대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유럽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한국전에서는 그 빈도가 훨씬 높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이유를 “미군장병들이 동양인을 ‘국’(gook)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자신들보다 낮은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군이 아시아인에 대해 가진 인종차별 인식은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맥아더의 심리전 참모였던 보너 펠러스(Bonner F. Fellers) 준장은 내부 비망록에서 “태평양 전쟁은 인종주의적 전쟁”이었다고 밝혔다. (중략)
한국전쟁에 파견되기 전 일본에 주둔한 미군은 일시적이나마 일본인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리고 이미 강하게 뿌리내린 미국인 우월주의와 모든 면에서 백인이 아시아인보다 낫다는 편견이 확고해졌다. 전쟁에서 백인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아시아권 남자들은 백인들의 군화나 닦고 여자들은 백인들의 노리개나 될 법한 존재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212~214쪽)
남한 정부가 정권 차원에서 학살과 같은 처리방침을 직접 지시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승만이 가지고 있었던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는 그 이상의 공포와 증오였다. 집단적인 폭력과 의도를 가진 학살은 결국 국가행위와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승만 정부는 북한지역에서 우익단체의 이런 행위를 제재하거나 통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추겼으며, 북한 내부의 학살 역시 이와 유사했다. 절대악으로 규정된 자들에 대한 이데올로기 확신과 개인 차원의 복수심이 민간인 피해를 가중시켰다. 가해자의 합리성은 학살을 수행하는 도구적 수단일 뿐이었고 쌍방 간에 벌어진 학살은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이 함께할 수 없는 분화와 분리의 원체험이 되었다. 또한 이는 민족의 내적 경계로서 분리된 두 공동체의 통합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303쪽)
북한의 국가건설은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동원체제하에서 진행되었는데, 인민들의 참가는 국가와 개인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전시 경험은 정치적 행위로 인식되었고 인민들은 조국에 대한 애국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전투현장과 공장, 기업소 등 노동력이 동원되는 모든 곳에서 인민들은 전장의 일상 속에 놓였고, 전쟁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서 국가와 개인에 대한 관계를 자각해나갔다. 이 과정은 대중동원을 위한 위로부터의 강압과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지지가 결합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공간적ㆍ시간적 차원은 인민들이 국가를 ‘자기 국가’로 받아들이는 귀속감을 갖게 했다. (463~464쪽)
전쟁은 김일성과 이승만에게 가장 큰 정치적 혜택을 가져다주었고 그들의 권력은 이전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전쟁을 수행한 것은 남북한 개별 구성원이었고 희생 또한 이들의 몫이었다. 정치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반도 현대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60여 년이 지났지만 이 긴장은 여전하다. 국민과 인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진 분단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구성하는 대결과정 속에서 강화해왔다.
여기에 개입한 미국과 중국의 영향은 정치적ㆍ군사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정전체제의 항구적 관리나 남북한의 평화체제 이행은 한국전쟁의 유산을 뛰어넘지 않고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사회를 재조직하고 남북한에 제한된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분단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세계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475쪽)
기본정보
ISBN | 9788971994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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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12년 06월 18일 |
쪽수 | 632쪽 |
크기 |
148 * 216
* 35
mm
/ 86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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