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디에

며칠 후, 최문기는 기진맥진해 돌아온 아내를 맞았다. 매일 같이 역에 나가 아내를 마중하던 문기는 정작 아내가 돌아오자 처량하리만치 수척해진 그 모습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아내는 돌아오자마자 아랫목에 누워 끙끙 앓으면서 웬일인지 그칠 사이 없이 그냥 눈물만 쏟고 있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압록강의 그 푸른 물, 굽이치며 흐르는 깊은 물속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알몸뚱이의 여인이 미친 듯 웃으며 걸어 나온다. 여인의 온 몸에 온통 처바른 선혈, 물속에서도 씻겨지지 않고 그냥 그녀의 몸에 묻어있는 피. 그것이 정녕 죽어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윤의 넋이였던가.
"기숙아!"
춘희는 정신 없이 외치며 달려 가다가 우뚝 멈춰섰다. 검푸른 강물, 춘희는 그것이 두려웠다.
"아 하하… 언니. 여기 들어와. 이 속에 편하게 살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어. 어서. 뛰어만 들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니까. 어서. 뭐해, 뛰어들지 않구…"
웃으며 거침없이 춘희에게 달려나오는 여인 가까이 다가드는 여인은 분명 기숙이가 아니다. 일그러진 얼굴, 갈쿠리 같은 손으로 자기를 사정없이 움켜쥐려 양팔을 벌리는 여인 아닌 여인.
"악!"
놀라 깨어보면 질펀한 땀만이 잔등을 적신다. 정말 그녀의 말처럼 그 깊은 강심속에 또 다른 편한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비명에 죽은 그의 넋이라도 잠재울 수 있으련만.
기숙이가 불쌍했다. 죽은 남편을 부등켜안고 통곡하던 기숙이는 끝내 미쳐 버렸다. 아무리 입혀 주어도 입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기숙이. 검푸른 강물 속에 뛰어들 때 그녀는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문기는 오열에 시달리는 사랑하는 아내를 조용히 보듬어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
어린애처럼 남편의 품에 파고 들며 왕왕 소리내여 울고있는 김춘희. 문기는 품속에서 한태규가 넘겨준 그 옥가락지를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아내의 손가락에 조심히 끼워 주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울기만 하는 아내, 김춘희.